1
어릴 때 친구와 방바닥에 둘러앉아 음악 듣는 걸 좋아했다.
그때 정말 많이 들었다. 하루 종일 들어도 질리지 않았다.
2
한번은 〈천공의 에스카플로네〉 엔딩 타이틀 곡을 친구랑 같이 듣는데, 뭔가 이상했다.
현악이 낮게 깔리다가 갑자기 시야가 트이는 느낌, 발밑이 없어지고 바람이 훅 지나가는 느낌.
분명 방바닥에 앉아 있는데 몸이 붕 뜨는 것 같았다. 눈을 감으면 하늘이 보였다.
3
"오 이거 엄청난데, 혹시 이 음악 나오는 화면에 하늘을 누비는 게 있었냐"
같이 듣던 친구가 놀란 얼굴로 맞다고, 너 귀가 좋다고, 정확히 짚어냈다고 나를 추켜세웠다. 나도 우쭐했다.
4
하지만 그다음 얘기가 더 놀라웠다.
"작곡가가 대단한 거지. 그 느낌을 음악에 이렇게 정확히 옮겨놨으니까. 화면 한 번 안 본 사람이 그걸 딱 맞추게 만든 거잖아."
생각해보니 그랬다. 나는 그 애리를 본 적도 없었다. (나중에는 봤지만) 음악만 듣고 장면을 그려낸 거였다. 소리가 눈보다 먼저 느낀 셈이다.
자기가 본 걸 남이 안 봐도 느끼게 만드는 탁월함을 그녀는 갖고있다.
5
그 작곡가 이름을 그때 처음 들었다. 칸노 요코.
나중에 알았다. 그녀는 원래 음악 전공이 아니었다.
소설가가 되겠다고 와세다대 문학부에 들어갔다가, 대학은 딱 일주일 다니고 밴드에 빠졌다. 정식으로 화성학을 배운 적도 없다. 두 살 때 피아노 앞을 떠나지 않아서 부모가 사줬다고 한다.
그녀는 말보다 음으로 표현하는 게 편했다고 했다. 이론이 아니라 감으로 쌓은 사람.
6
그래서였을까. 그녀는 장르 하나에 머물지 않았다.
우리 마음에 불을 지른 〈카우보이 비밥〉이라거나, 〈에스카플로네〉, 〈대항해시대〉까지-
재즈를 붙였다가, 댄스를 얹었다가, 펑크로 넘어갔다가. 필요하면 다 섞고 조립해서 내놓았다.
악기 하나, 장르 하나에 자신을 묶어두지 않았다. 곡마다 다른 사람이 만든 것 같은데, 어디서든 그녀라는 걸 알겠는게 신기했다. 이런게 정체성인 것 같다. 독보적인 소설가의 글을 읽으면 문체가 묻어나오듯, 그녀의 음악엔 개성이 강했다.
(나를 관통하는 뮤지션 몇을 꼽으라면, top10엔 당연히, top3에도 들어간다.)
7
그녀 옆에는 늘 목소리 하나가 있었다. 사카모토 마야. 칸노 요코에게 뮤즈 같은 존재다.
원래 성우였던 그녀를, 칸노 요코가 노래시켜 가수로 만들었다. 성우의 목소리를 가수의 그것으로 탈바꿈한 그녀의 선구안이 탁월하다.
그때 이후로 오래도록 함께 갔다. 칸노 요코가 선택한 그녀이니, 덩달아 그녀를 좋아할 수 밖에.
8
화면을 안 본 사람 머릿속에 하늘을 그려 넣는 것.
목소리 하나를 알아보고 세상에 꺼내놓는 것.
장르를 넘나드는 것도 다 같은 얘기다.
틀에서 나와 그럴싸하게 해체하고 조립하고 멋진 예술을 창조한다.
칸나 요코의 탁월함이 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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