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길바닥에서 함께 울던 날 — R2D2
어릴 때 집안은 어려웠다. 가난을 입증하듯, 지금도 선명한 사건 하나가 있다.
스타워즈 R2D2.
리모콘으로 앞뒤로 움직이고, 로봇팔까지 조종되는 최신형 장난감. TV 광고에서 본 순간 마음을 빼앗겼다. 미래가 손에 잡힐 것 같았다. 갖고 싶었다.
하지만 부모님은 퇴짜를 놓았다. 비싼 장난감은 우리 집의 세계 바깥에 있는 물건이었다.
나는 길바닥에 주저앉아 울어버렸다. 아이의 투정이 아니라, 세상에 대한 항의처럼.
혼날 줄 알았다. 그런데 엄마가 나를 안았다. 철없는 아들을 나무라기는커녕, 사주지 못해 미안하다며 같이 울었다. 길 위에서 모자가 함께 울던 그 장면은, 아직도 기억에 선하다.
2. 포도 한 송이도 쉽지 않던 시절
초등학교 전의 기억이라 희미하다. 그러나 파편처럼 남아 내 안에서 반짝인다.
우리 집은 어려웠다. 지금의 기준으로 재면 다를지 몰라도, 그때의 가난은 내겐 체감적 현실이었다. 과일은 귀했고, 외식은 더 귀했다.
아버지는 공무원 월급으로 자식 둘을 키웠다. 당시엔 몰랐지만, 지금 돌아보면 얼마나 빡빡했을지 짐작이 간다. 나로서는 이해할 수 없었던, 그러나 부모 세대에게는 당연했던 절약과 버팀의 시대.
<응답하라 1988> 속 흔한 골목처럼, 모두가 넉넉하지 않던 시절이었다. 그래도 누군가는 포도 한 송이를 사먹었고, 우리 집은 그조차 쉽지 않았다.
3. 오리 발의 갯수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시험을 봤다. 결과는 처참했다. 시험을 왜 잘 봐야 하는지 몰랐던 나는, 그저 장난삼아 문제를 풀었을 뿐이다.
집에 돌아오니 부모님이 싸우고 계셨다.
"엄마가 애를 신경 안 쓰니까, 애가 오리 발이 두 개인 것도 모른다."
아버지가 쏘아붙였고, 엄마는 억울해했다.
나는 사실 알았다. 오리 발이 두 개인 걸. 다만 정답을 맞히는 일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을 뿐이다. 그런데 그 사소한 시험지 한 장이 부모의 전쟁을 불러왔다.
그 싸움이 싫었다. 나는 그 싸움을 멈추게 하고 싶었다.
4. 1등, 그리고 첫 족발
그때 결심했다. 시험을 잘 봐야 한다. 그래야 싸움이 멈춘다.
집중했고, 노력했다. 결과는 놀라웠다. 시험지를 받아들었을 때 점수는 높았고, 등수는 1등이었다.
부모님은 환하게 웃었다. 그 웃음은 태양 같았다. 그날 우리는 없는 살림을 쪼개 외식을 했다. 엄마가 좋아하던 족발집이었다.
기억 속 장면은 지금도 선명하다. 커다란 접시에 놓인 족발, 김이 모락모락 나는 쌈, 그리고 웃음소리. 나에겐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보상이었다.
5. 나의 금메달, 나의 트로피
그 후로 규칙이 생겼다. 반에서 1등을 하면 족발을 먹는다. 족발은 성적과 맞물린 보상의 상징이 되었다. 나의 금메달이자, 나의 트로피였다.
신기한 일이다. 어린 시절 그렇게 반복해 먹었으면 물릴 만도 한데, 나는 지금도 족발을 좋아한다. 단순한 식욕이 아니다. 추억의 음식, 보상의 맛, 사랑의 기억이 한 접시에 함께 담겨 있기 때문이다.
6. 갑자기 족발
그래서 지금도 가끔 족발이 땡긴다. 배고파서가 아니다.
엄마와 함께 울던 길바닥, 아버지와 어머니의 웃음, 가족의 작은 행복. 그 무형의 것들이 내게 요동친다.
족발은 내게 단순한 음식이 아닌, 살아있는 기억과 추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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