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회사를 쉬던 때가 있었다. 시간은 많고 마음은 헛헛했다. 그때 동네 도서관을 매일 드나들었다.

서가 한 칸을 통째로 차지한 이름이 있었다. 히가시노 게이고. 처음엔 한 권 빌렸다가, 다음 날 또 갔다. 그러다 어느새 서가에 꽂힌 그의 책을 순서도 없이 다 읽어치우고 있었다.

2
오디오북에서도 그의 책을 다 들었다. 갖고 싶은 욕심이 생겨, 녹음기를 구매하여 파일 하나하나를 한땀한땀 정성들여 모으고 소장했다. 운동하면서도 듣고, 운전하면서도 듣고, 설거지하면서도 들었다.

백야행, 용의자 X의 헌신, 비밀, 악의, 방황하는 칼날, 라플라스의 마녀, 가면 산장 살인사건. 갈릴레오 시리즈에 가가 형사 시리즈, 매스커레이드 시리즈까지- 무수히 많은 책을 쏟아냈다.

3
그 중 제일 좋았던 건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이었다.

낡은 잡화점 셔터에 편지를 넣으면, 며칠 뒤 답장이 온다는 설정이었다. 그런데 그 답장이 과거에서 온다. 시간을 건너뛰어 사람과 사람이 이어진다는 그 헐거운 설정 하나로, 몇 백 페이지를 끝까지 끌고 갔다. 그리고 그의 책 대부분이 어둡고 눅눅했다면, 그 책 만큼은 밝고 쳥량했다.

읽으면서 자꾸 생각했다. 나도 누군가에게, 언젠가, 뒤늦게라도 닿는 글을 남기면 좋겠다는 막연한 꿈이었다.

4
사실 나도 소설을 쓴 적이 있다. 공모전에서 상도 받았다. 그 여세로 웹소설 연재를 준비하다 좌초됐다. 연재할 수준은 아니었던 내 비루한 실력에 덧붙여... 생업이 바빠지고, 회사가 바빠지고, 삶이 바빠졌다. 원고는 그대로 폴더 안에 덮였다.

5
부끄럽다. 그는 데뷔작으로 상까지 받고도, 그 뒤로 10년을 무명으로 버텼다고 한다. 화려한 시작이 아니었다. 그런데도 매년 두세 권씩, 40년을 그렇게 써냈다.

심지어 나오키상 심사위원 자리까지 맡았다가, 2019년엔 그마저 내려놓았다. 이유는 하나였다. 쓸 시간이 부족해서.

한 인터뷰에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독자들이 내 아이디어에 계속 놀라기를 바란다."
감동도, 아름다운 문장도 아니고 아이디어로 놀라게 하겠다는 그 말이 오래 남았다.

재능 얘기가 아니다. 저 페이스를 40년 유지했다는 게 무섭다. 그냥 매일 책상에 앉는 사람이었을 뿐이다.

6
얼마전 그의 부고를 들었다. 향년 68세, 대장암이었다고 한다. 투병 중에도 원고를 놓지 않아, 다음 달 유작이 출간된다고 한다. 한동안 멍했다.

그리고 며칠째, 덮어뒀던 원고 파일을 다시 열어본다. 몇 줄 고치고, 또 덮고, 다시 연다. 현생의 번잡함에 지금 쓸 시간이 없겠지-하며 다시 덮었다.

7
잡화점 답장은 늦게라도 도착한다. 내 원고도 그렇게 가면 될 일이려나.
다작의 왕은 재능보다 꾸준함이다. 그의 팬으로서 그의 떠남을 진심으로 기린다.

나도 계속, 더, 꾸준히 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