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정에 관하여

1
얼마전 오랜만에 누군가의 소식을 들었다. 주위 사람을 갈아넣는 것으로 유명했던 사람이다. 그는 무례했고 경우가 없었다. 그런 그가 커리어의 성공 가도를 달리고 있다고 한다. 모두가 부러워한다고-

씁쓸했다. 권선징악이라 하지 않았나? 권선징악은 고사하고 오히려 더 잘된다니, 이게 뭔가 싶었다.

또다른 이야기도 있다. 한없이 착했던 누군가는 일이 풀리지 않아 빚더미에 앉아 꾸역꾸역 버티고 있다. 내게 세상 착하고 다정했던 그가 잘 풀리지 않는다는 이야기에 가슴이 먹먹해졌다.

2
그래서 한동안 싱거운 결론을 곱씹었다. 다정하지 않은 쪽이 성공의 확률을 높이는 게 아닐까.

그런데 얼마후 같은 사람에 대한 전혀 다른 얘기를 들었다.

"저는 그런 상사 본 적이 없어요."
"...네?"
"젠틀하고, 챙겨주고. 너무 훌륭한 분이죠."

이해가 가지 않았다. 내 주변 사람들은 그 이름이 나오는 것만으로 혀를 내두르며 힘들어했다. 같은 사람인데, 한쪽에서는 사람을 갈아넣는 자고 다른 쪽에서는 다시 만나고 싶은 상사다.

악마도 누군가에겐 아빠고,
천사도 누군가에겐 악마다-

내가 본 다정은 그가 내게만 보여준 다정이다. 그 사람의 전부가 아니다. 내가 착하다 느낀 그 친구도, 다른 누군가에게는 지독한 사람이었을지 어찌 알겠는가.

3
판단이 맞다 쳐도 문제가 하나 더 남는다.

다정과 성공 사이에는 아무 관계가 없다. 무자비가 그를 성공시킨 게 아니다. 그는 다른 무언가로 잘된 거고, 무자비는 그냥 딸려온 거다. 다정이 그 친구를 넘어뜨린 것도 아니다. 시장이 틀어졌거나, 타이밍이 나빴거나, 그저 운이 없었을 것이다.

다정은 성공의 변수가 아니다. 애초에 그 함수에 들어가지 않는 값이다.

권선징악을 기대한 내가 순진했다. 세상은 다정을 세지 않는다. 세는 건 나 하나다.

4
그럼에도 나는 사람들이 더 다정해야한다고 생각한다.

누구든 한 번은 넘어진다. 잘나가는 그도 언젠가는 넘어진다. 영광의 순간엔 넘쳐나던 사람이, 역경엔 완벽하게 압축된다. 그때 곁에 남은 사람의 숫자가 그동안 뿌려둔 다정의 정산서다. 다정은 잘나갈 때 쓰는 게 아니다. 넘어질 때 쓰는 것이다.

그리고 사람을 도구로 쓰는 일은 습관이 된다. 매일 사람을 갈아 쓰면, 어느날 자기 자신도 갈아 쓴다. 남에게 무자비한 사람이 자기에게 다정한 경우를 나는 본 적이 없다.

5
그러니 다정하게 살자. 성공하려고가 아니라, 넘어질 자리에 미리 쿠션을 깔아두려고-

그리고 곁은 고르자. 한번 뿐인 삶이다. 무례한 사람은 걷어내고, 무해한 사람들만 남기자.

말을 바꾸거나,
없던 이야기를 지어내거나,
내 욕을 하고 다닌다는 얘기가 돌아오면,
구구절절 설명하거나 들으려 하지 않는다. 그냥 끊어낸다.

다정은 성공의 수단이 아니다.
넘어졌을 때의 안전망이고, 나를 나로 남겨두는 방식이다.

나는 모두에게 다정하려 노력한다.
다만 그날의 기분과 상황에 따라 다정하지 못한 날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늘 다시 돌아와 오늘도 내일도 다정하려 노력한다.